강의실에서 노트북을 펴려다 멈칫한 적이 있다면, 아마 이 말을 들어 봤을 겁니다. "손으로 써야 머리에 남는다."
이 말에는 실제 연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10년 동안 반박하는 연구와 다시 반박하는 연구가 이어졌습니다. 짧게 답하면 이렇습니다. 도구가 무엇이냐보다 받아 적느냐, 소화해서 적느냐가 더 중요하고, 손필기의 이점은 있더라도 생각보다 작습니다. 긴 답은 독자들이 실제로 궁금해할 질문 순서대로 풀어 보겠습니다.
"손으로 써야 더 잘 기억된다"는 말은 어디서 나왔나요?
2014년 학술지 『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팸 뮬러(Pam Mueller)와 대니얼 오펜하이머(Daniel Oppenheimer)의 논문입니다. 제목부터 강렬했습니다. 「펜은 키보드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
대학생들에게 짧은 강의 영상을 보여 주고, 절반은 노트북으로, 절반은 손으로 필기하게 한 뒤 시험을 봤습니다. 세 번의 실험에서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 사실을 묻는 문제(언제, 누가, 몇 개)에서는 두 무리의 점수 차이가 없었습니다.
- 개념을 묻는 문제(왜 그런가, 무엇과 무엇이 다른가)에서는 손으로 쓴 쪽이 더 잘했습니다.
연구진이 짚은 이유는 필기 내용이었습니다. 노트북 쪽은 강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경향이 훨씬 강했습니다. 타자는 빠르니 들리는 대로 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내용을 머릿속에서 소화하지 않고 손가락만 움직이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손은 느리니 어쩔 수 없이 줄이고, 고르고, 자기 말로 바꾸게 됩니다.
이 논문은 크게 화제가 됐고, 이후 강의실 노트북 금지를 주장하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연구, 다시 해 봐도 같은 결과가 나왔나요?
여기서 이야기가 흔들립니다.
2019년 켄트 주립대의 모어헤드(Morehead), 던로스키(Dunlosky), 로슨(Rawson)은 같은 실험을 다시 해 봤습니다. 이번에는 전자 필기구를 쓰는 무리와 아예 필기를 하지 않는 무리도 넣었습니다. 결과는 무리들 사이에 일관된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필기를 전혀 안 한 무리와도 뚜렷하게 갈리지 않았습니다. 필기를 복습할 시간을 주자 차이는 더 줄었습니다.
2021년에는 터프츠 대학의 헤더 어리(Heather Urry)가 연구방법론 수업 학생 전원과 함께 원래 실험을 최대한 똑같이 다시 했습니다. 노트북 74명, 손필기 68명이었습니다.
- 노트북 쪽이 더 많이, 더 그대로 받아 적는다는 점은 원래 연구와 같았습니다.
- 그런데 시험 점수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개념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구진은 비슷한 연구 8건을 모아 작은 메타분석도 했는데, 손필기와 노트북 필기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었습니다. 논문 제목은 「아직 노트북을 버리지 마세요(Don't Ditch the Laptop Just Yet)」였습니다.
그럼 손필기의 이점은 없는 건가요?
단정하기 이릅니다. 여러 연구를 모은 메타분석끼리도 결론이 다릅니다.
2022년 캐나다의 보이어(Voyer) 연구팀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 39건을 모아 분석했고, 필기 도구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반면 2024년 미국의 플래니건(Flanigan) 연구팀은 대학생 대상 연구 24건(3,005명)을 모아 손필기 쪽이 작지만 일관되게 유리하다고 보고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가지입니다.
- 노트북 필기가 강의 내용을 더 많이 담고 있었는데도, 성적은 손필기 쪽이 더 좋았습니다.
- 손필기의 이점은 필기를 나중에 다시 보고 공부했을 때 더 커졌습니다.
연구진이 효과의 크기를 알기 쉽게 바꿔 설명한 예가 있습니다. 손필기를 하는 학생 중 A를 받는 비율이 약 9.5%라면, 노트북 필기 학생은 약 6%라는 것입니다. 차이는 있지만, "손으로 안 쓰면 망한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두 결론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이유는 효과가 원래 작기 때문입니다. 작은 효과는 어떤 연구를 포함하느냐, 시험을 언제 보느냐, 복습을 했느냐에 따라 보였다 안 보였다 합니다.
손으로 쓸 때 뇌가 더 활발해진다는 뇌파 연구는요?
2024년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NTNU)의 판 데르 벨(Van der Weel)과 판 데르 미어(Van der Meer)는 대학생 36명에게 단어를 손으로 쓰게 하거나 키보드로 치게 하면서 뇌파를 쟀습니다. 손으로 쓸 때 여러 뇌 영역 사이의 연결이 더 넓게 활성화됐다는 결과였고, "손글씨가 뇌를 더 쓴다"는 기사로 널리 퍼졌습니다.
다만 이 연구로 필기법을 정하기에는 빈틈이 큽니다. 같은 학술지에 실린 반론이 짚은 점들입니다.
- 참가자들은 이미 아는 단어를 받아 쓰기만 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기억하는지는 재지 않았습니다.
- 타자 조건은 오른손 검지 하나로만 치게 했습니다. 평소 우리가 타자 치는 방식과 다릅니다.
- 뇌 영역 연결이 활발하다는 것이 곧 더 잘 배운다는 뜻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쓸 때 뇌가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까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가 더 잘 된다는 것은 이 연구가 보여 준 범위 밖입니다.
그럼 저는 뭘로 필기해야 하나요?
10년의 연구를 겹쳐 보면, 도구보다 확실하게 드러나는 변수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받아 적기 대 소화해서 적기. 원래 연구부터 재현 연구까지 공통으로 확인된 사실은 "노트북은 그대로 받아 적게 만든다"는 것 하나였습니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그 습관입니다. 노트북을 쓴다면 일부러 속도를 늦춰, 강사의 문장 대신 내 문장으로 적으세요. 손으로 쓴다면 이 일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고요.
둘째, 다시 보느냐. 손필기의 이점이 가장 크게 나타난 조건은 필기를 나중에 다시 공부했을 때였습니다. 필기는 적는 순간보다 다시 꺼내 볼 때 제값을 합니다. 이때도 그냥 읽기보다, 필기를 덮고 내용을 떠올려 본 뒤 맞춰 보는 쪽이 낫습니다. 학습 피라미드 글에서 다룬 '꺼내 보기'가 여기서도 통합니다.
하나 덧붙이면, 노트북에는 필기 방식과 별개의 위험이 있습니다. 2013년 캐나다 연구팀(Sana 등)의 실험에서는 수업 중 노트북으로 딴 일을 한 학생의 점수가 떨어졌고, 그 화면이 보이는 자리에 앉은 옆 학생의 점수까지 떨어졌습니다. 노트북을 쓴다면 알림과 다른 창부터 닫는 것이 필기법보다 먼저입니다.
다음 강의에서 노트북을 쓰게 된다면, 한 문장을 받아 적을 때마다 그 옆에 "그래서 무슨 뜻이지?"에 대한 내 대답 한 줄을 붙여 보세요. 손으로 쓰는 사람이 저절로 하던 일을, 키보드로도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 쓰인 연구
- Mueller, P. A. & Oppenheimer, D. M. (2014).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 Psychological Science, 25(6), 1159–1168.
- Morehead, K., Dunlosky, J. & Rawson, K. A. (2019). How much mightier is the pen than the keyboard for note-taking? Educational Psychology Review, 31.
- Urry, H. L. et al. (2021). Don't ditch the laptop just yet. Psychological Science, 32.
- Voyer, D., Ronis, S. T. & Byers, N. (2022). The effect of notetaking method on academic performance: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Contemporary Educational Psychology, 68, 102025.
- Flanigan, A. E. et al. (2024). Typed versus handwritten lecture notes and college student achievement: A meta-analysis. Educational Psychology Review, 36, 78.
- Van der Weel, F. R. & Van der Meer, A. L. H. (2024). Handwriting but not typewriting leads to widespread brain connectivity. Frontiers in Psychology, 14, 1219945.
- Sana, F., Weston, T. & Cepeda, N. J. (2013). Laptop multitasking hinders classroom learning for both users and nearby peers. Computers & Education, 62, 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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