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법의 과학

"저는 시각형 학습자라서요" — 학습 스타일이 사실이려면 실험에서 나와야 할 그래프 하나

thinknavi 2026. 10. 17. 14:52

시각형, 청각형, 운동감각형. 검사지 몇 장을 풀면 내가 어느 쪽인지 알려 주고, 그 유형에 맞춰 공부하라고 합니다. 시각형은 그림과 도표로, 청각형은 강의 녹음으로, 운동감각형은 몸을 움직이며.

 

교사들도 대부분 이 말을 믿습니다. 2012년 영국과 네덜란드 교사 242명을 조사한 연구에서 "학생은 자기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받을 때 더 잘 배운다"는 문장에 영국 교사의 93%, 네덜란드 교사의 96%가 동의했습니다. 뇌 10% 속설 글에서 인용한 바로 그 조사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뇌 10%'를 믿은 교사는 절반이 안 됐으니, 학습 스타일은 그보다 훨씬 널리 퍼진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맞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맞다면 반드시 나와야 하는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맞다면 이런 결과가 나와야 한다

2008년 미국의 심리학자 해럴드 패슐러(Harold Pashler)와 동료들은 학습 스타일 연구를 모아 검토하면서, 이 주장을 증명하려면 어떤 실험이 필요한지부터 정리했습니다.

  1. 먼저 사람들을 유형별로 나눕니다. 예를 들어 '시각형'과 '청각형'.
  2. 각 유형을 다시 둘로 나눠, 절반은 그림으로, 절반은 말로 같은 내용을 가르칩니다.
  3. 똑같은 시험을 봅니다.

 

학습 스타일이 사실이라면 결과는 엇갈려야 합니다. 시각형은 그림으로 배웠을 때 점수가 높고, 청각형은 말로 배웠을 때 점수가 높아야 합니다. 그래프로 그리면 두 선이 X자로 교차합니다.

  그림으로 배움 말로 배움
시각형 학습자 높음 낮음
청각형 학습자 낮음 높음

 

반대로 이런 결과는 학습 스타일의 증거가 아닙니다.

  • 모두가 그림으로 배웠을 때 점수가 높다 → 그 내용은 원래 그림이 잘 맞는 내용일 뿐입니다.
  • 시각형이 어떤 방식으로 배워도 점수가 높다 → 그 사람들이 원래 그 시험을 잘 볼 뿐입니다.

 

핵심은 유형과 방식이 맞을 때만 점수가 오르는가입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맞춤 가설(meshing hypothesis)'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 그래프가 나왔나

패슐러 연구팀이 찾아보니, 학습 스타일을 다룬 연구는 많았지만 위의 설계를 제대로 갖춘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몇 안 되는 연구들은 X자 교차를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연구팀의 결론은, 학습 스타일 검사를 교육 현장에 쓸 만한 근거가 아직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이 설계를 그대로 따른 실험이 나왔습니다. 2015년 미국의 로고프스키(Rogowsky), 캘훈(Calhoun), 탈랄(Tallal)은 성인들을 검사로 '시각형'과 '청각형'으로 나눈 뒤, 같은 글을 오디오북으로 듣게 하거나 전자책으로 읽게 했습니다. 이해도는 배운 직후와 2주 뒤에 쟀습니다.

 

결과는 X자가 아니었습니다. 시각형이 읽었을 때 더 잘하지도, 청각형이 들었을 때 더 잘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어느 유형이라고 생각하든, 점수는 그와 상관없었습니다.

 

대학 해부학 수업 학생 수백 명을 따라간 2019년 연구(Husmann & O'Loughlin)에서는 다른 문제도 보였습니다. 학생들 대부분은 검사로 알게 된 자기 유형대로 공부하지도 않았고, 유형에 맞춰 공부한 학생이 성적이 더 좋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잘 맞는 것 같을까

학습 스타일이 근거가 약하다는 말을 들으면 반발심이 드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나는 정말 그림이 있어야 이해가 되는데?" 이 느낌 자체는 거짓이 아닙니다. 다만 몇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선호는 진짜입니다. 그림 보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 듣는 걸 더 편해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연구가 부정하는 것은 선호가 아니라 "선호대로 배우면 더 많이 남는다"는 부분입니다.

 

내용이 방식을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도, 기계 구조, 그래프는 누구에게나 그림이 낫습니다. 외국어 발음은 누구에게나 듣는 게 낫습니다. 그림으로 배운 지리가 잘 이해됐던 경험은 "내가 시각형이라서"가 아니라 그 내용이 그림에 맞아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편한 방식이 잘 배운 방식은 아닙니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다룬 것처럼, 오래 남는 공부는 오히려 힘들게 꺼내 보는 쪽입니다. 내 유형에 맞는 방식이라 술술 읽힌다는 느낌은, 학습이 잘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 수 있습니다.

검사지 대신 던져 볼 질문

학습 스타일 검사가 해롭다고까지 말하긴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 결과를 믿고 "나는 청각형이니 도표는 안 봐도 된다"처럼 공부 방법을 좁힐 때 생깁니다.

 

유형을 묻는 대신 이렇게 물어보는 편이 낫습니다.

  • 이 내용은 무엇으로 보여 줄 때 가장 정확한가? 구조라면 그림, 절차라면 순서도, 소리라면 듣기.
  • 그림과 말을 함께 쓸 수 있는가? 설명을 말이나 글로만 듣는 것보다 알맞은 그림과 함께 볼 때 더 잘 배운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이건 유형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해당하는 결과입니다.
  • 다 읽은 뒤에 책을 덮고 떠올려 봤는가? 어떤 방식으로 배웠든, 이 단계가 빠지면 남는 게 적습니다.

 

"나는 어떤 유형인가"보다 "이 내용은 어떻게 배워야 하나"가 더 쓸모 있는 질문입니다.

참고한 연구

  • Pashler, H., McDaniel, M., Rohrer, D. & Bjork, R. (2008). Learning styles: Concepts and evidence.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 9(3), 105–119.
  • Dekker, S., Lee, N. C., Howard-Jones, P. & Jolles, J. (2012). Neuromyths in education: Prevalence and predictors of misconceptions among teachers. Frontiers in Psychology, 3, 429.
  • Rogowsky, B. A., Calhoun, B. M. & Tallal, P. (2015). Matching learning style to instructional method: Effects on comprehension.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107(1), 64–78.
  • Husmann, P. R. & O'Loughlin, V. D. (2019). Another nail in the coffin for learning styles? Disparities among undergraduate anatomy students' study strategies, class performance, and reported VARK learning styles. Anatomical Sciences Education, 12(1), 6–19.
  • Mayer, R. E. (2009). Multimedia Learning (2nd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