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집 단원 끝의 연습 문제는 대개 이렇게 생겼습니다. 1번부터 20번까지 전부 방금 배운 공식으로 푸는 문제. 다섯 문제쯤 풀면 손이 저절로 움직이고, 스무 문제를 다 맞히면 이 단원은 끝났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시험지에서는 문제가 단원 순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 블로그의 분산 학습 글이 "언제 다시 볼까"를 다뤘다면, 이번 글은 "무엇과 섞어서 볼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두 가지 연습지를 떠올려 보세요
수학 단원 세 개, A(넓이), B(부피), C(확률)를 공부했다고 해 보겠습니다. 연습 문제 열두 개를 두 가지 방식으로 배열할 수 있습니다.
연습지 1 — 몰아서 풀기
A A A A · B B B B · C C C C
연습지 2 — 섞어서 풀기
B A C A · C B A C · A B C B
문제 열두 개는 똑같습니다. 순서만 다릅니다. 어느 쪽이 실력이 더 늘까요?
대부분은 연습지 1을 고릅니다. 실제로 풀어 보면 연습지 1이 훨씬 편하고, 맞히는 개수도 많습니다. 연구자들이 궁금했던 것은 그 편안함이 시험 날에도 이어지는가였습니다.
실험실에서: 연습 점수와 시험 점수가 뒤집혔다
2007년 미국 사우스플로리다 대학의 더그 로러(Doug Rohrer)와 켈리 테일러(Kelli Taylor)는 대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입체도형의 부피를 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한 집단은 유형별로 몰아서, 다른 집단은 유형을 섞어서 연습하게 했습니다.
연습하는 동안에는 몰아서 푼 쪽이 더 잘 맞혔습니다. 같은 공식을 연달아 쓰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시험에서는 결과가 뒤집혀, 섞어서 연습한 쪽이 크게 앞섰습니다.
연습 때의 점수가 실력을 보여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실에서: 54개 반, 넉 달 동안
실험실 결과가 실제 학교에서도 통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로러 연구팀은 미국 중학교 1학년(7학년) 54개 반을 무작위로 나눠, 넉 달 동안 수학 숙제의 일부를 몰아서 내거나 섞어서 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예고 없이 시험을 봤습니다. 이 연구는 2019년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됐습니다.
섞어서 연습한 반의 평균 점수는 61%, 몰아서 연습한 반은 38%였습니다. 같은 종류의 문제를 풀었는데도 이 정도 차이가 났습니다.
그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수학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2008년 미국 UCLA의 네이트 코넬(Nate Kornell)과 로버트 비요크(Robert Bjork)는 사람들에게 화가 열두 명의 그림을 보여 주고 화풍을 익히게 했습니다. 일부 화가는 그림을 몰아서, 나머지 화가는 섞어서 보여 줬습니다.
나중에 처음 보는 그림을 보여 주고 누구 그림인지 맞혀 보게 하자, 섞어서 본 화가의 그림을 더 잘 맞혔습니다.
이 실험에서 더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시험이 끝난 뒤에도 "몰아서 보는 쪽이 더 도움이 됐다"고 답했습니다. 자기 점수가 반대로 나왔는데도 그랬습니다.
왜 섞으면 더 남을까
몰아서 풀 때 우리 머리가 하는 일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방금 쓴 방법을 한 번 더 쓰는 것.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섞어서 풀면 문제마다 한 단계가 더 붙습니다. "이건 어떤 유형이지?"를 먼저 알아봐야 합니다. 시험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능력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험 문제에는 "이 문제는 부피 공식을 쓰세요"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다.
섞어 연습은 이 '알아보기'를 연습 단계에서부터 반복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연습할 때는 더 틀리고 더 느리지만, 시험에서는 더 잘 풉니다. 그림 실험에서도 섞어서 볼 때 화가들 사이의 차이가 더 잘 보였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오늘부터 해 보기
1. 문제집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푸는 순서만 바꿉니다. 한 단원을 끝낸 뒤 바로 그 단원 문제만 풀지 말고, 이전 단원 문제를 몇 개씩 섞어 넣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C단원을 배웠다면 C 네 문제, B 세 문제, A 세 문제를 섞어서 풉니다.
2. 오답 노트도 섞어서 다시 풉니다. 단원별로 정리된 오답을 한꺼번에 섞어 무작위 순서로 풀어 보면, 어떤 유형을 구분하지 못하는지가 드러납니다.
3. "어떤 유형인지"를 먼저 말해 봅니다. 풀기 전에 문제 옆에 '부피', '확률'처럼 유형을 먼저 적어 보세요. 섞어 연습의 핵심인 알아보기 단계를 의식적으로 하는 방법입니다.
4. 처음 배울 때는 몰아서 해도 됩니다. 공식을 처음 익히는 단계에서는 같은 유형을 몇 개 연달아 푸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섞기는 익숙해진 다음 단계에서 효과가 큽니다.
5. 틀리는 게 많아져도 놀라지 마세요. 섞어 풀면 연습 점수는 떨어집니다. 그림 실험의 참가자들처럼 "역시 몰아서 하는 게 낫네"라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그 느낌이 연구 결과와 반대라는 것을 기억해 두면 됩니다.
꺼내 보기, 나눠서 복습하기, 그리고 이번의 섞어서 풀기. 세 방법 모두 연습할 때는 더 힘들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교에 쓴 연구
- Rohrer, D. & Taylor, K. (2007). The shuffling of mathematics problems improves learning. Instructional Science, 35, 481–498.
- Kornell, N. & Bjork, R. A. (2008). Learning concepts and categories: Is spacing the "enemy of induction"? Psychological Science, 19(6), 585–592.
- Rohrer, D., Dedrick, R. F., Hartwig, M. K. & Cheung, C.-N. (2020).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of interleaved mathematics practice.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112(1), 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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